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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장

얼핏 보면 삼지창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있습니다. 지도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이 반도의 모양이 뽕나무 잎사귀와 비슷해서, 중세 시대에는 이곳을 모레아 (뽕나무) 반도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며,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80 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상업의 발달로 물질적인 번영을 누린 도시였지만, 여러 종교가 혼합되었고 빈부의 격차가 심했으며 음란한 문화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선교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교회에는 여러가지 이슈들이 있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분쟁하며 분열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10-11절). 성도들 사이에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와 같은 파벌이 생겼습니다 (12절).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러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다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이 길이 바로 십자가의 도 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고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이유는 이들의 정체성의 변화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지만 (22절),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23절). 이제 더 이상 유대인도 헬라인도 아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도가 성도들에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능력이 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소유와 지혜를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31절). 우리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교회는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성도들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새로운 정체성을 “부르심”이라 했습니다 (24절).

오늘의 묵상을 통해서, 나는 십자가의 복음을 어떻게 삶으로 살아내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갈 때,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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