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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컬럼 | Pastor's Blog

새벽묵상
Daily Devotions
요한복음 10:1-21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 복음) 과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줍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나는 ~이다” 의 형태를 띤 구절을 7번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I AM statements” 라고 하고, 헬라 원어로는 “에고 에이미” 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 가지 “에고 에이미” 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3) 나는 양의 문이다 (10:7). (4) 나는 선한 목자다 (10:11).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7) 나는 참 포도나무다 (15:1). 이러한 예수님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김정훈 목사
Jan 26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2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장애를 죄와 연결해서 생각한 것은 꽤 일반적인 통념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서 저주를 받아서 질병 혹은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기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언제 죄를 지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죄라고 한다면 태중에서도 죄를 지을 수 있는가를
김정훈 목사
Jan 24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를 말씀하셨을 때, 그곳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그들이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33절). 하지만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나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로 사역을 하셨던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판하며,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유는 죄에 대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김정훈 목사
Jan 23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4-5절) 이 질문이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기 위한 시험이 되는 이유는, 만약 예수님께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시면 로마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당시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사형 집행권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자를 돌로 치지 말라 하시면 모세의 율법을 어긴 죄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교활한 의도를 잘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히셔서 손
김정훈 목사
Jan 22
요한복음 7:37-53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의 3대 명절을 간략하게라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대표적인 명절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구원하신 사건을 기념합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을 때 죽음이 지나갔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후 50일이 지난 때이며,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합니다. 성령의 강림과 교회의 탄생이 오순절에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장막에서 거하며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은혜를 기념합니다. 초막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절기입니다 (레위기 23:33-44 참고). 오늘 본문 말씀은 초막절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 참고). 초막절 기간은 전체 8일인데, 7일 동안은 집이 아닌 초막 (장막) 에서 거하면서 매일
김정훈 목사
Jan 21
요한복음 7:1-36
예수님의 형제들은 누구였을까요? 마태복음 13:55 에 기록된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였습니다. 마가복음 6:3 에도 동일하게 기록이 되어 있고, 누이들도 있었던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그 이후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예수님과 함께 자랐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과 함께 자랐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5절). 이 구절을 살펴보면 앞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을 쫓아오던 무리와 예수님을 따르다 떠난 제자들처럼, 형제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떠난 이유는 그들의 배를 책임질 임금으로 삼으려는 것을 예수님께서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었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난 이유도 예수님을 통해 한자리 차지하려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형
김정훈 목사
Jan 20
요한복음 6:60-71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0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예수님의 생명의 떡에 관한 가르침 이후에 있었던 반응입니다. 제자들은 왜 예수님의 말씀을 어렵다고 했을까요?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메시야에 대한 이해와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혀 반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달랐습니다. 앞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본 것처럼, 유대인들은 그들의 배를 부르게 할 임금과 같은 메시야를 바랐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킬 왕을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의 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메시야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와 사망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메시야의 개념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는 찬란한 영광의 메시야가 아닌 십자가 형벌에서 찢기시는 낮은 자리로 임하시는 메시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는
김정훈 목사
Jan 19
요한복음 6:22-59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15절).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보이지 않자,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간절히 예수님을 찾아다닌 것은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임금이 된다면 적어도 배는 고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아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6절 b).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이용해서 그들의 배를 불리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부분을 지적하신 다음, 이 땅의 썩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말씀합니다.
김정훈 목사
Jan 17
요한복음 6:1-21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에서 행하신 대표적인 기적 중 하나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기적을 표적으로 부릅니다) 이 표적이 일어난 곳은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디베랴는 요한이 성경을 기록하던 당시 이방인들에게 알려진 갈릴리 호수의 이름입니다. 같은 곳의 두 지명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 산에 오르셨는데,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2절). 당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들도 낫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이들을 보셨습니다 (5절).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어떻게 이들을 먹일지도 아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셨습니다. 빌립이 말했던 데나리온의 가치는
김정훈 목사
Jan 16
요한복음 5:30-47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오랫동안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야이신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31-32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스스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아들 되심을 증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증언을 말씀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의 증언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세례 요한도 진리에 대해서 증언을 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않으신다 하십니다 (23절). 다만 세례 요한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리를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를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부 하나님께서 성
김정훈 목사
Jan 15
요한복음 5:19-29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미스터리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19-20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하나되신 관계를 계시해 주십니다. 성부와 성자의 연합은 예수님의 겸손을 나타냄과 동시에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해진 것과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신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께 허락하신 권한은 심판과 생명입니다. 마지막 날에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이는 예수님
김정훈 목사
Jan 14
요한복음 5:1-18
예수님의 행적을 공부하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어디를 찾아가셨는지 알게 되면, 예수님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셨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발견하게 되는 예수님은 한 개인과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니고데모를 만나시고,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만났던 곳은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록에 따르면 천사가 가끔 이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지 나았다고 합니다. 치유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베데스다 못으로 모였고,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치유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가셨던 38년 된 병자는 잘 움직일 수 없었던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병이 낫고 싶은데 다른 방법으로는 나을 수가 없었고, 베데스다
김정훈 목사
Jan 13
요한복음 4:31-54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야) 이신 것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28절). 이 여인에게 물동이는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났던 시각은 유대 시간으로 여섯 시였습니다 (6절). 이는 현대 시각으로 정오에 해당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낮 12시에 우물가로 나왔던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낮은 무척 덥고 밤은 추운 사막성 기후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피해다녔던 여인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에게 가장 중요했던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돌아가 메시야를 만났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29절).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난 증인들의 변화입니다. 이 상황에 먹을 것을 구하려 동네로 갔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제자들은 예수님께 음식을 드리려 했습니다.
김정훈 목사
Jan 12
요한복음 4:1-30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3절). 예수님 당시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과 요단 강을 따라 멀리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이 3일 정도 걸렸다면 돌아가는 길은 6일이 걸렸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의 순수 혈통과 신앙 전통을 앞세워 사마리아인을 경멸했습니다 (9절 참고).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품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대표적인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 갈릴리로 가기로 하셨습니다 (4절).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대화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지역의 ‘수가’라 하는 동네에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을 달라 하셨습니다. 이는 육체에 관련된 영역입니다. 갈증이 나고 배가 고플 때 우리는 물이 필요하고 음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김정훈 목사
Jan 10
요한복음 3:22-36
오늘 본문에는 세례 요한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1장에서는 요한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세례 요한의 생각과 성품을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대 땅에서 세례를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22절). 예수님의 세례 사역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4장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요 4:2). 예수님께서 직접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스승에게 알렸습니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6절). 세례 요한의 제자
김정훈 목사
Jan 9
요한복음 3:1-21
니고데모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외식을 책망하셨지만, 이들은 율법을 지키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지도자란 당시 사회 전체에 큰 영향력을 가진 최고 지도층 인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성전청결 사건 이후로 유대인의 기득권 세력이 예수님을 적대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니고데모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밤에 찾아왔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던 이유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화의 내용으로 그 이유를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3절에 예수님의 대답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데,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방법을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김정훈 목사
Jan 8
요한복음 2:13-25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시편 69:9). 오늘 본문 17절에 기록된 제자들이 기억했던 말씀이 바로 시편 69:9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는 제사에 드리는 제물이었는데, 이 동물들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당시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던 제사장들이 제물을 검사했는데, 흠이 있다고 판정을 내리면 다른 제물을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먼 길을 떠나온 이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파는 동물을 사야 했습니다. 또 백성들은 성전에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 세상에서 쓰는 돈을 성전에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환전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실 때,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돈을 바꾸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김정훈 목사
Jan 7
요한복음 2:1-12
오늘 본문에 기록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행하신 첫번째 표적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저자인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표적(sign)”으로 불렀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사람들은 기적을 대했을 때 놀라운 현상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표적은 현상 자체가 아닌 그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마치 운전을 하다가 보게 되는 이정표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표적이 되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줍니다. 갈릴리에 가나라는 시골 동네에 혼례가 있었습니다. 이 혼인 잔치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 그리고 제자들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보통 5-7일 동안 열렸습니다.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였으며, 신랑 집안이 모든 음식과 포도주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포도주는 잔치의 필수 요소였고 잔치를 하는 동안 떨어져
김정훈 목사
Jan 6
요한복음 1:35-51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제자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세우신 첫 제자들입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시면 총 다섯 명의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원래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다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을 때, 예수님을 따랐던 두 명의 제자들이 먼저 등장합니다. 두 명 중에 한 명은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였고, 안드레는 그의 형제인 시몬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갑니다. 이틑날 예수님께서 베다니를 떠나 갈릴리로 출발하실 때 빌립을 만나시고 빌립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빌립은 그가 알고 지내던 나다나엘을 찾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옵니다. 여기까지 이름으로 밝힌 제자들은 안드레, 시몬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총 네 명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한 명은 누구일까요? 그는 이 모든 사건을 보고 기록한 사도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을 따랐다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
김정훈 목사
Jan 5
요한복음 1:19-34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사가랴’로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역대상 24장을 보시면 성전을 봉사하기 위해 제사장들을 세웠는데, 그 수가 많아서 전체 24개의 제사장 반열을 세워서 1년에 두 번씩 각각 일주일간 성전을 봉사하게 했습니다. 아비야 반열은 그중 여덟 번째 반열입니다 (대상 24:10). 세례 요한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으로 아론의 자손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 세례 요한은 혈통적으로 정통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었습니다. 이는 요한이 어릴 때부터 성전 중심의 신앙관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성전이 아닌 광야에서 지냈으며, 제사가 아닌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또한 예수님과 친족 관계입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친족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눅 1:36).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자식이 없었고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기적과 같이 아이를 잉태하게
김정훈 목사
Jan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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