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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컬럼 | Pastor's Blog

새벽묵상
Daily Devotions
고린도후서 10장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바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은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하다고 스스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1절). 바울이 이렇게 말했던 이유가 10절에 나와 있는데, 바울을 대적했던 이들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이렇게 바울의 권위를 깎아내리려고 했던 이들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적 권위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모든 권위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교회의 모든 권위는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그룹이 자기 과시를 위해서 교회의 권위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역자의 권위를 말할 때
김정훈 목사
Sep 20
고린도후서 9장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 가운데 재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관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친해지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는지 묻는 것도 어렵습니다. 각 개인의 재정적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적 터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에서도 재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성경적인 재정의 원리에 대해서 함께 나누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재정에는 결국 그 사람의 가치가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정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의 재정도 다스려야 합니다. 교회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하고 평소의 삶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면, 우리는 실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m)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
김정훈 목사
Sep 19
고린도후서 8장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게도냐 교회들”은 현재 그리스 북쪽 지역으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마게도냐의 교회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이들이 신앙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의 이러한 신앙의 모범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합니다. 은혜는 원어로 “카리스”라는 단어인데, 은혜, 기쁨, 감사, 자비, 선물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은혜는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허락하신 선물은 다름 아닌 그들의 넉넉한 마음이었습니다. 마게도냐의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연보)을 모았는데, 이들이 절대로 여유가 있어서 연보를 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이들은 극심한 가난 가운데 풍성한 연보를 모았던 것입니다 (2절). 이들은 힘에 지나도록 자원했습니다 (
김정훈 목사
Sep 18
고린도후서 7장
고린도후서 7장에는 그동안 힘들었던 바울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명 ‘눈물의 편지’로 불리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낸 후,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의 회개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을 통해 큰 위로를 받습니다. 5절에서 바울은 그와 일행이 마게도냐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먼저 보내고,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갔는데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해 근심하게 됩니다 (고후 2:12-13). 바울과 일행은 디도를 만나기 위해서 마게도냐로 이동합니다. 결국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나게 되고, 고린도 교회가 회개했다는 소식을 디도를 통해서 듣게 됩니다 (6-7절). 8절 이하로 바울은 디도의 소식을 듣고나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눈물의 편지를 보낸 것을 처음에는 후회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김정훈 목사
Sep 17
고린도후서 6장
고린도후서 6장에서 바울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즉 하나님의 동역자인 것을 먼저 언급합니다. 이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헛되이”의 원어적 의미에는 ‘공허하며 텅 비어 있는’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게 만들까요? 그것은 거짓 교사들이 전한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어서,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는 때가 도래했음을 알립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2절). 여기서 바울은 “지금은”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을 합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멀리할 수 없으며, 지금 당장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긴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장에서 바울
김정훈 목사
Sep 16
고린도후서 5장
우리는 모두 죽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지금 당장 호흡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이라는 현실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가 겪게 될 육체의 죽음에 대해서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은 우리의 육체입니다. 그 육체가 무너지는 것은 죽음입니다.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부활 이후의 삶 즉 “영원한 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땅이 마지막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에 대한 증거가 있는데, 바로 보증으로 주신 성령님입니다 (5절). 우리 안에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바로 우리의 부활의 증거입니다. 이렇게
김정훈 목사
Sep 15
고린도후서 4장
본 장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앞서 기록된 3장에서 하나님께서 교회의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영의 직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 너무나 영광스러운 직분이지만 현실에서는 낙심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도들이 겪는 내면의 어려움은 일종의 영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복음을 광채로 표현했는데,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복음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7절). 비록 우리는
김정훈 목사
Sep 13
고린도후서 3장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평소에 자주 쓰지 않는 단어가 나옵니다. “자천”이라는 단어입니다. 스스로를 추천한다는 뜻이지만, 어떤 번역에서는 자화자찬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구절에 “추천서”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자기추천서의 개념으로 “자천”을 이해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배경에는, 바울의 대적자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불신하도록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선동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바울의 사도직이 의심될 경우, 그동안 바울이 전하고 가르쳤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의 사도직을 보호하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사도직을 증명해주는 편지는 일반적인 추천서가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먹으로 쓴 편지보다 더 분명한 것은 성령으로 변화된 성도들이며, 이들이 바로 사
김정훈 목사
Sep 12
고린도후서 2장
부모에게 자녀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들 때를 꼽으라면, 아마도 아이들을 훈계하고 난 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바로 양육하기 위해서 때로는 매도 들어야 하지만, 그렇게 혼을 내고 나면 부모가 더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후서 2장에는 이러한 부모의 심정과 같은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2장의 구조는 (1) 사도 바울이 눈물로 편지를 쓴 이유 (1-4절), (2) 교회를 근심하게 만든 자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 (5-11절), 그리고 (3) 믿는 자들이 가져야 할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정체성 (12-17절) 입니다. 사도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쓴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분쟁, 음행, 거짓 교사, 바울에 대한 불신 등과 같은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방문할 때 엄하게 그들을 꾸짖는 것보다, 서신을 통해 미리 책망하여 그들이 회개에 이르고, 실제 방문에서는 기쁨으로 만나
김정훈 목사
Sep 11
고린도후서 1장
고린도후서의 배경을 간략히 말씀을 드리면,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 도중 마게도냐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린도 교회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신(잃어버린 첫번째 편지와 고린도전서)을 보냈지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이 마저도 성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바울은 눈물의 편지(혹은 근심의 편지)로 불리는 세번째 서신을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이후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회개의 소식을 듣게 되고, 이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 고린도후서를 다시 보내게 됩니다. 첫번째와 세번째 편지는 잃어버린 서신이고, 두번째와 네번째 서신은 고린도전서와 후서로 남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전체 구조는 디도로부터 받은 소식을 듣고 교회에 대해 안도하고 있음을 알리고(1-7장), 예루살렘의 교회를 돕기 위해서 구제 헌금을 독려하며(8-9장), 사
김정훈 목사
Sep 10
다니엘 12장
많은 이단들이 종말론을 쓰는 바람에 정작 교회에서 종말론을 다루는 것이 어색해진 것이 현대 교회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도 아시고 미리 예언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장면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서 물었을 때 이단의 출현을 가장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 24:4-5). 이단들의 특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세상의 끝이 와도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인 12장은, 헬라 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11장보다 좀 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1장에 등장하는 비천한 북방 왕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묘사하고 있으며, 그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김정훈 목사
Sep 9
다니엘 11장
오늘 본문에 기록된 환상의 역사적 배경은 헬라(그리스) 제국입니다. 헬라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제국을 세운 정복자로 잘 알려진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으로 헬라 제국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이었던 필립 2세의 아들로, 기원전 336년에 아버지가 암살을 당한 후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가 왕이 되고 불과 10여년 만에 그리스, 페르시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북서부까지 점령을 합니다. 하지만 기원전 323년에 33세의 나이로 병에 걸려 요절을 합니다. 제국의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알렉산더 대왕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국은 분열이 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후계자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을 가리켜 ‘디아도코이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헬라 제국은 네 개의 왕조로 분열이 되는데, 앞서 9월 4일 묵상 가이드에서 알려드렸던 것처럼,
김정훈 목사
Sep 8
다니엘 10장
다니엘서 10-12장에는 다니엘의 마지막 환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 제삼년에 다니엘이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1절). 본 장은 환상에 대한 서론으로, 다니엘이 어떻게 환상을 받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세 이레” 즉 3주 동안 슬퍼하며 좋은 떡과 고기와 포도주를 끊었습니다. 당시 다니엘이 있었던 “힛데겔” 강은 바벨론 지역의 티그리스 강을 가리킵니다. 5-6절에 기록된 “한 사람”에 대해서는 천사라는 의견과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인자’로 불렀던 것을 보았을 때, 후자의 견해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이 환상은 다니엘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다니엘만 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다니엘서 10장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살펴볼 점은,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순
김정훈 목사
Sep 6
다니엘 9장
09/05 묵상 가이드 성경에는 많은 기도문이 등장합니다. 의인 10명을 위해서 기도했던 아브라함의 기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생명을 걸었던 모세의 기도, 아들을 간구하는 한나의 기도 등 많은 기도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민족의 죄악을 대신해 자복하며 회개하는 다니엘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도에는 기도를 하게 되는 이유와 배경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오늘 본문의 기도를 하나님께 간절히 드린 이유는, 예언서를 연구하다가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예레미야 25:11-12 혹은 29:10 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 기간을 70년으로 이미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
김정훈 목사
Sep 5
다니엘 8장
오늘 본문은 다니엘이 벨사살 왕 3년에 본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다니엘이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몸은 수산 성에 있었고, 환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다니엘이 바벨론에 있으면서 수산 성과 을래 강변의 환상을 보았다는 해석과 다니엘이 외교적인 일로 수산 성에 왔다가 을래 강변의 환상을 보았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환상의 배경이 당시 바벨론 제국의 수도가 아니라 메대-바사 제국의 수도였다는 점은, 앞서 금 신상 환상과 네 짐승 환상에서 예언되었던 것처럼 정권의 교체가 있을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환상에 등장하는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바사 제국의 왕들을 의미하고, 털이 많은 숫염소는 헬라 제국의 왕을 의미합니다. 숫염소의 큰 뿔은 첫째 왕인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키고, 이후 나타난 네 뿔은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에 분열된 헬라의 네 왕
김정훈 목사
Se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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