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 김정훈 목사
- Jan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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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2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장애를 죄와 연결해서 생각한 것은 꽤 일반적인 통념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서 저주를 받아서 질병 혹은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기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언제 죄를 지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죄라고 한다면 태중에서도 죄를 지을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고, 부모의 죄라고 한다면 조상의 죄 때문인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신학적인 논제를 통해서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들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의 생각의 흐름을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3절). 에스겔 18장을 읽어 보시면, 하나님께서 조상의 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고치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이유를 찾기보다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시제로 해석을 한다면 과거가 아닌 미래로 우리의 생각을 옮기신 것입니다. 과거의 이유로 인해서 현재의 고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난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일이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죄입니다. 정죄를 하실 수 있는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타락을 한 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남 탓을 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찾기보다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실로암에서 이 맹인의 눈을 밝히셨습니다. 날 때부터 볼 수 없었던 자가 보게 된 것입니다 (7절). 하지만 이 놀라운 치유의 사건이 안식일에 있었다고 해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오히려 죄인으로 몰아갔습니다 (14절). 아이러니한 것은 날 때부터 맹인었던 자는 예수님을 보게 믿게 되었고, 스스로를 볼 수 있는 자로 여겼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