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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장

음행이라는 단어는 원어로는 ‘포르네이아’ 로 보편적으로 불법적인 성행위를 뜻합니다. 성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이 될 때가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인간의 타락이 가지고 온 결과로, 하나님의 선물이 이기적인 육체의 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3:4).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있었던 음행을 꾸짖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단순히 음행만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이러한 범죄가 정죄되지 않았다는 것을 더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부도덕한 성행위가 성도들 사이에 공공연히 알려졌는데도, 교회가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정화 기능이 무너지게 되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도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이는 삶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는 각 개인에게 적용이 되는 영적 원리이지만, 교회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사랑으로 이 과정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5절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구절이지만, 심각한 죄를 범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출교 시켜 그들이 오히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라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이와 같은 심각한 범죄를 누룩과 비교를 했습니다. 적은 누룩이라도 제거하지 않으면 온 덩어리에 퍼지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회개를 하고, 그 죄를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가혹한 처벌 같지만 이를 통해 죄를 지은 본인도 회개할 기회를 얻게 되고, 교회도 죄의 나쁜 영향에서 보호가 됩니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죄의 유혹이 다가올 때 입을 열어 선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예수님 안에 있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주님을 내 마음과 삶으로 초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개인의 죄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 더욱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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