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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6장

지난 주 월요일에 Jury Duty (배심원 의무) 로 헤켄섹에 위치한 버겐 카운티 법원에 다녀왔습니다. 하루 종일 법원에 있어야 했지만, 배심원 제도로 이루어진 미국의 재판 과정을 몸소 체험하는 귀한 하루였습니다. 소송은 법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법적 갈등을 재판을 통해 해결하는 곳이 법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용서하는 곳입니다. 재판이 아닌 사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곳입니다. 법원과 교회는 존재 목적이 다릅니다.

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교회의 본분인 사랑과 용서를 잃어버리고 세상 법정으로 나아가 서로 고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의 갈등을 무조건 덮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치리가 있어야 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잘잘못을 따지기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서 성도들이 서로 고발하는 것은 교회의 무능함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서로를 미워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나의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잘못된 행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2절).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유하게 되었지만, 우리의 몸으로 방종을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쾌락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두 절은 우리가 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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