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장
- 김정훈 목사
- Feb 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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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월요일에 Jury Duty (배심원 의무) 로 헤켄섹에 위치한 버겐 카운티 법원에 다녀왔습니다. 하루 종일 법원에 있어야 했지만, 배심원 제도로 이루어진 미국의 재판 과정을 몸소 체험하는 귀한 하루였습니다. 소송은 법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법적 갈등을 재판을 통해 해결하는 곳이 법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용서하는 곳입니다. 재판이 아닌 사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곳입니다. 법원과 교회는 존재 목적이 다릅니다.
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교회의 본분인 사랑과 용서를 잃어버리고 세상 법정으로 나아가 서로 고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의 갈등을 무조건 덮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치리가 있어야 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잘잘못을 따지기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서 성도들이 서로 고발하는 것은 교회의 무능함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서로를 미워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나의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잘못된 행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2절).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유하게 되었지만, 우리의 몸으로 방종을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쾌락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두 절은 우리가 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