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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오늘 본문 말씀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본문의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어떤 목적으로 이 말씀을 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그리고 결혼의 목적이 단순히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남편과 아내를 두라고 합니다.

조금은 억지 같은 이 말씀의 배경이 고린도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고, 이 신전에서 매음을 일삼았던 여사제만 삼천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환락의 도시였던 고린도에서 음행을 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이러한 환경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고린도의 특수 상황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인처럼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면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자 살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 받은 은사라고 말합니다 (7절). 하지만 정욕을 절제할 수 없다면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설명을 합니다 (9절).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고린도에서, 교회의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권리에 대해서 당부합니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4절). 결혼을 통해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몸을 종속하게 됩니다. 아내의 몸은 남편의 것이며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입니다.

이러한 남편과 아내의 권리와 종속에 대한 개념은 이후 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이 됩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2절). 우리는 주 안에서 자유하지만, 예수님께 종속된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데 이 개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자유하지만, 예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우리를 그분의 피로 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종속되기에 우리의 몸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통해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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