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장
- 김정훈 목사
- Feb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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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복음을 전하라 보내시며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마태복음 10:10). 그리고 칠십 인을 세우시고 보내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누가복음 10:7).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추수할 일꾼이라 부르시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그들의 수고에 합당한 사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9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한 그들의 사례를 받을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고 설명합니다 (12절).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집에 유하며 지내라고 하셨지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이러한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다르지만 이유는 같습니다. 둘 다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는 사도 바울의 전도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20절),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고 (21절),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22절) 모두 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2b-23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풀타임 사역자가 될 수도 있고, 복음을 위해서 텐트메이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킬 수도 있고, 복음을 위해서 율법을 모르는 자들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방법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열심을 내어 전하려고 했던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이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솟아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