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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2장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요4:24). 따라서 성도들이 영적인 경험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14년 전에 셋째 하늘(낙원)에 이끌려 올라간 영적인 경험을 언급합니다. 그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나,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크게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약함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여기서 함께 생각해 볼 것은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되는 셋째 하늘에 올라간 경험을 바울이 부득불 말한 이유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공격하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의심하도록 유혹했습니다. 바울이 그의 사도의 직분을 변호했던 이유는 그가 전한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이 전했던 복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바울은 그의 영적 권위를 알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적인 경험이 바울에게 자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바울 자신이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7절을 보시면, 바울이 받았던 영적인 계시가 너무 커서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바울은 이를 사탄의 사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가시가 떠나도록 주께 세 번 간구를 했지만,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성도의 연약함을 통해 나타납니다. 나의 약함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그의 사도직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1-12절). 그리고 바울은 자비량으로 사역했고 재정적으로 고린도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교활하여 속임수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이용했다는 거짓 소문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그의 모든 것을 다해 그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을 지키기 위한 바울의 최선의 노력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살았고, 복음을 위해서 핍박을 받았으며, 복음을 위해서 부득불 자랑했습니다. 복음이 바울의 삶의 목적이었고, 그의 행동의 근간이었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우리에게 복음은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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