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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장

본 장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앞서 기록된 3장에서 하나님께서 교회의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영의 직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 너무나 영광스러운 직분이지만 현실에서는 낙심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도들이 겪는 내면의 어려움은 일종의 영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복음을 광채로 표현했는데,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복음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7절). 비록 우리는 모두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 안에 보배와 같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복음은 생명입니다. 죽을 육체에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음의 가치는 생명에 있으며, 예수님의 부활이 이것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모든 성도들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성도의 소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생명과 영원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약해지지만 속사람은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환난은 잠시지만 장차 받게 될 영광은 영원합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은 사라지고 말 것들이지만 성도들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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