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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우리는 모두 죽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지금 당장 호흡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이라는 현실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가 겪게 될 육체의 죽음에 대해서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은 우리의 육체입니다. 그 육체가 무너지는 것은 죽음입니다.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부활 이후의 삶 즉 “영원한 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땅이 마지막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에 대한 증거가 있는데, 바로 보증으로 주신 성령님입니다 (5절). 우리 안에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바로 우리의 부활의 증거입니다.

이렇게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부활의 소망은 또한 삶의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7절), 역설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8절). 지금 내가 죽어도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의인에게는 소망이 되지만, 악인에게는 심판이 됩니다 (10절).

이제 사도 바울은 본 장을 마무리하면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화목하게 하는 직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복된 소식(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18-19절).

오늘 묵상에서 우리는 복음 전파가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며,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일입니다. 성도들에게 맡기신 이 소중한 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잃어버린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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