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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장

최근 누가복음을 묵상하면서, 누가가 이 책을 기록할 때 각 장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적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어떤 사람의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과 영적 가르침 등 각 장에 등장하는 사건과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 누가의 의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누가복음 21장 전체에 흐르는 주제는 예수님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첫 이야기로 소개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본문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이 이야기가 성전의 멸망, 예루살렘의 환난, 예수님의 재림과 같은 굵직한 이야기들과 함께 있을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36절) 라는 예수님의 명령에서 그 힌트를 찾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는 환난,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입니다. 34절에 구체적인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영려로 인해 마음이 둔해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둔해지면 마지막 때를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했던 헌금함은 성전의 ‘여인의 뜰’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여인의 뜰’이라고 해서 여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여자와 남자, 모든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이 ‘여인의 뜰’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기도를 했던 곳이 바로 ‘여인의 뜰’이었습니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기도의 뜰’이었습니다.

헌금은 곧 기도이며,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잘 보여줍니다. 과부가 전 재산을 다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이 과부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진 성전은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은 아름답게 꾸며지는 곳이 아닌, 만인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누가는 가난한 과부이 이야기를 통해 성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하는데,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깨어나는 귀한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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