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1-31
- 김정훈 목사
- Nov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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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의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1-12절),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시는 주님 (13-16절), 그리고 부자 청년 이야기 (17-31절) 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첫번째 사건을 살펴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혼에 대한 질문을 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명기 24:1에 모세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이혼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해석은 “수치되는 일”을 간음과 같은 심각한 부정행위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진보적인 해석은 “수치되는 일”에 사소한 일들도 포함했습니다. 예를 들면, 요리를 못한다거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것은 진보적인 해석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진짜 목적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혼 증서를 쓰는 것을 부정하면 신명기 말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이혼을 허용하면 예수님의 도덕적인 권위가 흔들릴 위험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진보적인 해석을 부정할 것으로 예상하고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논쟁의 초점을 율법 해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갑니다. 이혼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결혼을 만드셨는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6-9 의 예수님의 대답은 창세기 1:27 과 2:24 을 바탕으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결혼은 계약이 아닌 언약입니다. 계약은 조건을 따라 파기될 수 있지만 언약은 영원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알려주시고, 모세의 율법이 사람의 불완전함과 완악함으로 인해서인 것을 또한 알려주십니다. 율법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만, 율법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어린 아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부자 청년 이야기도 이혼에 관한 논쟁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 가치의 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다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는 사랑, 겸손, 충성에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어린 아이처럼 겸손하며,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에 대해서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치관의 변화가 제자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