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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32-52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세 번째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에게 벌써 두 번을 말씀하셨고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예수님의 공생애의 최종 목적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겼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친형제였던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겠다는 심보였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8절) 여기서 잔은 십자가의 고난을 세례는 순교를 의미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실제로 야고보는 초대교회에서 가장 먼저 순교의 피를 흘린 사도였습니다. 그는 헤롯에 의해 칼로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12:2 참고). 사도 요한은 자연사를 했지만, 전승에 따르면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으나 기적으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는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가치는 섬김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그 가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45절).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섬김의 장소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도 치유의 사역을 계속 하셨습니다. 맹인 바디매오의 간절한 바램에 응답하시어 그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섬김의 자리는 어디인지,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알아가는 기도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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