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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1-29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에서 많은 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을 미워하며 죽이고자 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무리가 있었는가 하면 또 예수님을 존경하며 따랐던 많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 무리로 나뉘어진 이유는 예수님의 사역이 초자연적인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예수님처럼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병이 낫고자 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고자 하는 두 무리로 나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앞서 설명한 두 무리가 아닌, 예수님께 대해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세번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을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생애를 보았던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고향에서도 놀라운 지혜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3절에서 이들이 예수님을 무시하는 여러 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목수라는 천한 직업을 가진 자로 불렀고, 무엇보다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로 부른 것은 예수님을 무척이나 무시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아우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를 떨어뜨리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과 같은 신적 권위도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6절).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촌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6절). 그리고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전도 여행을 다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가 열두 제자들에게도 위임이 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마가는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시고 나서 예수님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절). 예수님의 명성이 당시 헤롯 왕에게까지 들리게 되었고, 세례 요한을 죽였던 헤롯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인해 두려워하며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여러가지 반응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 제자들, 헤롯 왕, 병자들까지 모두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들의 생각에 따라 예수님에 대한 경험이 모두 달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진면목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들을 치유하였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내가 아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매일의 묵상을 통해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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