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장
- 김정훈 목사
- Mar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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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받아왔던 모든 교육은 일을 한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학교에서 받는 성적은 공부로 노력을 한 만큼 받습니다. 그리고 일을 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가끔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노력을 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세상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기록된 포도원 품꾼 비유는 이러한 세상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이른 아침, 제삼시(오전 9시), 제육시(정오), 제구시(오후 3시), 제십일시(오후 5시)에 집 주인이 품꾼들을 데려와 포도원에서 일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품꾼들에게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이슈가 생깁니다. 날이 저물고 품꾼이 품삯을 받는데, 오후 5시에 와서 한 시간을 일한 사람들이나 그 전에 와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나 동일한 삯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집 주인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완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비유가 마태복음 19장에 등장하는 부자청년 이야기와 이어진다고 했을 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유로 다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말씀이 19:30 과 20:16 에 반복되어 언급된 것에서 이 비유는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것과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진지하게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도,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크냐 라는 이슈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치맛바람을 날리며 아들들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것을 요구했고, 나머지 열 제자들은 이를 분하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한심한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알려줍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7-28절).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과 희생에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일 수 있습니다. 나는 교만하여 으뜸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마태복음 20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비교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제자들의 다툼에서도, 우리의 비교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묵상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며 겸손의 자리로 내려오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