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1-22
- 김정훈 목사
-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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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스가랴 9:9). 선지자 스가랴의 이 예언의 말씀은 BC 520 년경에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500 년이 지난 후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 예언이 성취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겸손히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승리의 상징인 말을 타고 입성을 하는 것과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평화와 겸손을 상징하는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리고 마가와 누가의 기록처럼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예수님을 위해 구별된 거룩하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호산나”의 외침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사야 56:7 참고) 선포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지 매매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전에서 매매를 허락하고 이윤을 취했던 자들은 당시 기득권 세력이었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성전에서 매매하던 자들은 표면에 드러나는 자들이었고, 더 큰 이익을 취했던 자들은 제사장들이었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유대 사회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셔서 시장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는 아직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얻기 위해 한 무화과나무로 다가가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이 무화과나무가 잎사귀가 무성해서 열매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며 길을 가는 행인들이 취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잎이 있다는 것은 열매도 맺혔음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에는 잎만 있었고 열매는 없었습니다. 이는 형식만 강조를 하는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성전이 아니라,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며 장사를 하는 강도의 소굴과 같은 성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으로만 화려한 신앙생활이 아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삶이 변화되는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시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