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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7장

이제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이 됩니다.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게 되는데, 백부장 율리오가 이들을 맡습니다. 이들은 아드라뭇데노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서 출발을 해서 시돈을 거쳐 루기아의 무라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과 죄수들은 이곳에서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타고 이탈리아 로마로 향해 갑니다. 하지만 맞바람으로 인해서 배는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이르게 되었고, 바람이 더 심해지자 간신히 그레데 섬의 미항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 9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여기서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인의 속죄일인 욤 키푸르를 가리키며,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다는 것은 계절이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고대 지중해에서는 10월부터 항해가 위험했습니다. 특히 11월에서 2월에는 항해가 완전히 금지되어, 모든 선박이 항구에 정박되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미항에서 항해를 멈춰야 할 것을 권면했지만,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선장의 말을 따라 미항이 아닌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려고 했습니다 (11-12절). 처음에는 이 계획이 맞는 듯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당장 모든 일이 잘 되는 것 같지만 때로는 광풍을 만나게 되고, 반대로 광풍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한줄기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광풍을 만나 두려움에 떨며 소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2절). 바울이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이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25절).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14일이나 풍랑으로 배가 바다에서 이리 저리 떠다니다가 결국 난파됩니다. 그리고 배 안에 있던 276명이 모두 상륙하여 구조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유지했던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그 바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풍랑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의 믿음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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