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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편

성경에는 악인의 번영 때문에 의인이 시험에 들고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 예를 들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정직하게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데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며, 경건한 자들이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묻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예레미야 12:1)

오늘 본문인 시편 10편에도 동일한 주제가 등장합니다. 시편 기자는 왜 악한 자들이 형통하고 무고한 자들이 고통받는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현실 가운데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1절)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 같고, 환난의 때에 도와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인은 하나님께 어째서 그냥 침묵하시는지 묻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1절에 시작한 악인의 형통에 대한 질문은11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과 행동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탐욕을 부리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시합니다. 이들은 교만하여서 어느 곳에도 하나님이 없다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형통이 지속됨으로 인해서 어떤 환난도 당하지 않는다 합니다. 악인들은 가련한 자들을 잡고, 그들의 포악으로 가련한 자들을 넘어뜨립니다.

악인의 형통은 결국 교만과 잔인함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다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낮은 자와 억눌린 자의 편이 되신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신 것처럼 보여도 고통받는 자의 소리를 듣고, 정의를 이루시는 분이심을 시인은 굳게 붙듭니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17 a 절).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시편 10편을 통해 우리도 세상에서 부조리와 아픔을 경험할 때에도,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손길이 더디 오는 것처럼 보인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오늘 하루, 마음에 품은 질문을 정직하게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응답과 위로를 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양: 나 무엇과도 주님을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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