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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6편

“선교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예배가 궁극적인 목적이다. 선교는 예배가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 존 파이퍼 (John Piper) 목사님이 그의 저서인 <열방을 향해 가라> (Let the Nations Be Glad) 에서 한 말입니다. 현대 선교 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이 말은 선교의 진정한 동기와 목적이 인간의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선교의 목적이 예배라는 이 명제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사역이 예배의 연장선이어야 하고, 나아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예배의 한 부분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우리의 마음만이 아닌 몸까지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전인적인 예배가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하며, 우리의 매일이 예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96편을 큰 소리로 읽으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멜로디는 없지만 한 구절 한 구절 그 뜻을 마음에 품고 시편을 큰 소리를 읽을 때,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새 노래로 찬양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만민 가운데에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피조물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자원하는 헌신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의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피조물은 인간만이 아닙니다.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즐거워하며, 바다와 밭과 숲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참 예배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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