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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7편

우리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 중에 “현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자로는 顯現 인데, 두 한자 모두 ‘나타날 현’이 됩니다. 앞에 현은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을 뜻하고, 뒤에 현은 지금 나타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 무엇인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epiphany 인데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생겼을 때 쓰일 때도 있지만, 주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97편은 하나님의 현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한된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현현하셨을 때 이 땅이 어떤 반응을 하게 될지 표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구름과 흑암” (2절) 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셨을 때를 기억하게 합니다 (신명기 4:11). 시내 산에서의 하나님의 현현 이후로 성경의 많은 저자들이 이 표현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구름과 흑암이라는 표현과 함께 의와 공평, 대적들을 불사르는 불, 세상을 비추는 번개 등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엄위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시편 기자가 사용한 어구들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주 앞에서 밀랍 같이 녹았습니다 (5절).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우리는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가 경험하는 일반적인 두려움과 다릅니다. 보통의 경우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거나 극심한 고통이 다가올 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위엄 앞에서 모든 피조물이 무릎을 꿇게 되는 두려움입니다.

모순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모든 피조물에게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기쁨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공평으로 다스려지는 완전한 세상에서 땅은 즐거워하고 많은 섬은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악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많은 의인들을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십니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11절).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두려워 떨며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며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찬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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