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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9장

아모스서 9장은 심판 선언과 함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함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최종 심판에 대한 말씀은 다섯 번째 환상으로 나타납니다. 7장에서 메뚜기 재앙, 불 재앙, 다림줄 환상을 기록하고 있고, 8장에서 여름 과일 광주리 환상이, 그리고 오늘 본문인 9장에는 제단 곁에 서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환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제단에서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적어도 성전 혹은 제단에는 없어야 하는 것인 오히려 맞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먼저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인식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구원파라는 이단의 사상처럼,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10절까지 기록된 심판 선언은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는 자들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한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도 완전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심판에 대한 예언은 10절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11절부터는 회복과 소망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멸망한 북이스라엘 왕조를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오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참고로 사도행전 15:16-17에서 야고보가 아모스서의 이 말씀을 인용하며, 다윗의 무너진 장막의 회복을 이방인의 구원과 연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악한 자들에게는 화가 미치겠지만, 하나님 안에서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큰 복이 있을 것입니다.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라는 표현은 밭갈이가 쉴 새 없이 계속된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의 풍성함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구원을 받은 자들의 영생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회복과 소망에 있습니다. 우리의 끝도 죽음이 아닌 부활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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