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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5장

4장과 5장의 사이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에스더는 이미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과 모르드개에게 삼 일 밤낮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인 아니라 금식하며 기도하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본인도 시녀와 함께 금식을 한 후, 드디어 왕에게 나아갑니다.

왕후가 왕에게 나아가는 것이 뭐가 그렇게 큰 일이 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단 한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왕이 그의 금 규를 내밀어 왕의 안뜰에 나타난 자를 허락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에스더는 금식 후 “제삼일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사생결단의 각오를 하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1절).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는 여기서 또 발견하게 됩니다. 왕이 왕후 에스더가 왕궁 안 뜰에 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왕의 절대적 권한은 왕후도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은 에스더에게 금 규를 내밀었고, 에스더는 금 규 끝을 만지며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허락받게 되었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인 것처럼, 이제 에스더에게 하만을 견제할 수 있는 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왕에게 그녀의 마음을 바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에스더는 왕을 위한 잔치를 열고 하만도 그 잔치에 초청을 합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그녀의 소원을 그 잔치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시 한번 왕과 하만을 또 다른 잔치에 초청을 합니다. 이는 에스더가 소심해서가 아니라, 왕에게 궁금증과 함께 왕후에 대한 마음을 더 깊이 가지도록 하게 만드는 지혜였습니다.

하만은 자신만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며 무척 기뻐합니다. 하지만 모르드개로 인해 여전히 화를 내며, 모르드개를 달아서 죽이기 위해 오십 규빗 (약 23 미터) 이나 되는 나무를 수산성에 세웁니다. 이렇게 하만은 본인이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 알지 못한 채, 왕과 왕후 에스더를 만나며 자신의 특별한 위치에 취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의 에스더처럼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은 당장은 부귀영화를 누릴지 모르나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일 뿐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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