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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6장

“그 날 밤”은 에스더의 초청으로 왕과 하만이 잔치에 참여했었고,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서 높은 나무를 세웠던 날 밤이었습니다 (6:1, 5:5, 5:14). 왜 하필 그 밤이었는지는 하나님만 아시겠지만, 아하수에로 왕이 그 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읽게 하였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 역대 일기를 읽는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 때 마침 역대 일기에서 읽었던 기록이 모르드개의 공적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던 해에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던 두 내시 빅단과 데레스를 고발했고, 이 사건이 궁중 일기에 기록이 되었던 것입니다 (2:16-17, 2:21-23).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르드개의 공적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왜 모르드개가 상급을 받지 못했는지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큰 공적에 대한 보상이 당시에 없었다는 것이 지금 오히려 득이 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처럼 화가 변하여 복이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과거에 있었던 모르드개의 공적에 대한 상급으로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여기고 백성 가운데 높입니다. 왕이 입는 옷을 입히고 왕이 타는 말에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만의 손으로 행하게 합니다. 하만은 왕이 자신을 높여 줄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높이려던 모든 계획으로 모르드개를 높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만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높은 나무를 세웠는데, 왕은 오히려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여기고 왕복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타게 한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과 시간표를 보기에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일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오늘 내가 겪는 일들이 미래에 어떻게 작용을 할지 우리는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시고 우리는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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