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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8장

이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는 불공평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의 고통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만듭니다. “왜 악한 사람은 잘 되고, 선한 사람은 고생할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유한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질문입니다. 마치 영원을 사모하지만 영원을 가지지 못한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17절).

우리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참된 지혜자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유한한 인간의 내면에 ‘권선징악’과 같은 윤리적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선과 악을 구별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상급을 받고 악을 행하는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악인이 계속해서 악을 행하는 이유는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1절). 하지만 악이 당장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달라서, 우리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때에 악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전도자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작은 일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15절).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매 순간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실 축복을 기대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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