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9장
- 김정훈 목사
- Oct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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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인지” (metacognition) 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인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에 대한 생각’ 혹은 ‘인식에 대한 인식’으로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메타인지에 해당합니다.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자신을 포함한 세상을 관찰하는 것과 비슷하고 볼 수 있습니다.
전도서 9장을 묵상하면서, 전도자가 세상을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도자가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발견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부정한 자, 예배를 드리는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모두가 동일한 운명 (destiny) 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절).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운명은, 인생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3절).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분명하게 나타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의 메타인지에 마지막 심판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도자는 이 땅에서 가장 복된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를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7-10절). 여기서 먹고 마시는 것을 즐거워하라는 것은 쾌락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그 대가로 받은 것들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누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음식과 포도주는 풍성한 식사를 의미합니다. 술을 마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관자 되심을 믿기 때문에 미래의 불확실성도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도서 9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한 가난한 지혜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지혜자로 인해 어떤 성읍이 구원을 받았지만 그 지혜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록 지혜가 있었지만, 가난한 지혜자는 멸시를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참 알 수 없는 부조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공의를 펼치시는 날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서 안타까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공의를 이 세상에 펼쳐달라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