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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0-11장

성경을 읽다가 족보를 대하면, 많은 경우 단순히 읽고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이름 자체도 생소한데, 이름을 읽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족보를 읽을 때면 지루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앞서 창세기 4-5장에서 본 것처럼, 성경에서 족보는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과 속하지 않은 자들을 나누는 기록이 됩니다. 

창세기 10장에는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의 역사에서 이 족보로 인종차별적인 해석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대홍수 이후 인류의 역사가 계속 이어졌고, 셈과 함과 야벳이 인종적인 차이에 기원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한 형제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인종차별이 아닌 인류의 화합으로 해석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10장에서도 셈의 족보가 기록이 되어 있지만, 11장에 다시 셈의 족보가 자세히 기록이 된 것은, 셈의 족보에서 아브라함이 등장하게 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이는 9장에서 노아가 셈을 축복했던 예언의 성취로 볼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서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자들이 교만하여 바벨탑을 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셈의 족보는 아브람으로 이어지고, 아브람은 12장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지는 인생의 목적이 창세기 11: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늘에 닿는 탑을 세우는 것, 세상에서 최고가 되는 것, 그리고 이름을 내는 것,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 등,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많은 목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목적이 됩니다. 내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또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며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세상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하루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자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0:1-21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 복음) 과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줍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나는 ~이다” 의 형태를 띤 구절을 7번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I AM statements” 라고 하고, 헬라 원어로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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