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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장

오늘 창세기 18장의 말씀을 대하면서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요리한 음식을 먹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고, 당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섬겼던 것인지 아니면 워낙 나그네들을 잘 대접하기 때문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히브리서 13:2이 아브라함에 대한 설명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불시에 찾아오신다면, 나는 과연 하나님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대하셨습니다. 먼저 1년후 이맘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알려주십니다 (10절). 사라는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믿지 못하여 웃었는데, 하나님은 사라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고 사라의 믿음 없음을 꾸짖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보다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에게 숨김이 없으셨습니다 (17절). 하나님의 계획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이었고,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있다면 그들에게 향한 심판을 보류해 달라고 중보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3절). 아브라함의 중보는 의인의 숫자가 50명, 45명, 30명, 20명, 10명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의인의 존재로 인해 소돔과 고모라를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2절)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무척 좋아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아브라함과 같은 중보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10:1-21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 복음) 과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줍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나는 ~이다” 의 형태를 띤 구절을 7번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I AM statements” 라고 하고, 헬라 원어로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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