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창세기 24장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입니다.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늙은 종이지만, 아브라함은 이 종에게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겼습니다 (2절).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렇게 충성된 종에게 특이한 맹세를 하게 합니다.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할례의 언약을 근거로 하는 맹세라고 합니다. 3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하는 맹세는 위 해석에 신빙성을 더합니다. 

이렇게까지 중차대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이 아닌 아브라함의 족속에서부터 며느리를 구하기를 바랬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때 부름을 받고 동행했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이 자라 그 분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지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이 모든 신앙의 유산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무명의 충성된 종은 아브라함의 신임을 얻을 만한 자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12절). 종의 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 일이 아닌 주인의 일이지만, 주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종은 순탄하게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리브가는 종을 따라 가나안으로 오게 됩니다. 종은 하나님께 “형통함”을 기도했고 (42절), 하나님께서는 그 종의 기도에 “형통한 길”로 응답하셨습니다 (56절). 리브가가 이삭을 만난 곳은 네게브 광야 브엘라해로이였습니다. 하갈이 하나님을 뵈었던 곳으로, 지명의 뜻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라는 의미를 가진 우물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였습니다.

창세기 24장을 묵상하면서 무명의 충성된 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집중합니다. 무명이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