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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7장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이삭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고,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에서를 편애했던 이삭은 에서를 불러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브가는, 에서 대신 동생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사실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에서와 야곱 모두를 부른 것이 아니라 에서만 따로 불러 사냥을 해서 음식을 가져오라 했습니다. 하지만 이삭이 에서를 불러 말하는 것을 마침 그 때 리브가가 듣게 되었고, 리브가는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야곱에게 털을 입히고 별미를 만들어 이삭에게 나아가게 했습니다. 에서인 척 연기를 했던 야곱은 결국 이삭의 모든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가 맞고 틀렸는가를 따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25장에서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 이미 싸웠습니다. 리브가는 아들들을 위해서 기도했고, 하나님의 응답은 두 민족이 리브가의 태중에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습니다 (창 25:23).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누가 형이 되고 누가 아우가 될지 아셨고, 장자의 명분이 야곱에게 있을 것도 아셨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서 다투었던 것은, 이삭의 축복이 하나님의 언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은 결국 이삭에서 야곱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야곱이 에서를 속인 것이지만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우리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의 상황은 늘 변하고, 우리의 능력도 모자라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묵상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으로 인해 참된 평안을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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