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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3장

어제 본문이었던 창세기 42장과 오늘 본문 43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야곱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가에 있습니다. 42장에서는 주로 야곱이라는 이름이 쓰였다면, 43장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만 쓰였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42장과 43장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요셉은 13년이라는 기간을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을 배웠고 또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던 요셉은 결국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요셉은 형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제는 형들이 요셉을 통해 테스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들 뿐만 아니라 야곱도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테스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형들이 받게 된 테스트는 그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었고, 야곱이 받게 된 테스트는 그가 사랑했던 마지막 아들인 베냐민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렸던 것처럼, 야곱은 사랑했던 라헬과 요셉을 이미 잃어버리고 이제 마지막 베냐민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42장에서 베냐민을 놓지 못하는 야곱을 옛 자아를 나타내는 야곱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면, 43장에서는 이제 베냐민을 내려놓은 야곱을 새 자아를 나타내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42장에서 르우벤이 베냐민을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야곱은 화를 내며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43장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해서 베냐민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4절). 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인지요? 야곱은 하나님의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하고 이스라엘이라 불렸습니다.

요셉은 드디어 동생 베냐민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테스트를 이미 통과했고 이제 야곱을 테스트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테스트를 받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테스트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테스트는 모양을 달라도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가에 대한 테스트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묵상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Pass’ 라는 답을 주실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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