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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5장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10).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팔복 중에 마지막 복은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자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왜 박해가 따르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해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모세와 아론이 드디어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1절). 하나님을 예배하는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신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고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낼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이유가 타당한 것처럼 들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상관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 왕입니다. 애굽 왕이 애굽 백성이나 통치할 것이지 하나님의 백성까지 간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의 논리는 교묘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지혜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노역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평소 벽돌을 만들 때 사용하던 짚을 주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짚을 주워서 벽돌을 만들게 합니다. 그리고 벽돌의 수효는 이전과 동일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게으르다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 사람들은 너무나 힘든 노역으로 인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바로가 백성을 학대하는데, 하나님께서도 그의 백성을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아룁니다 (23절).

박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요 15:20). 성경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우리에게 아무런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고난의 길을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물에 들어갔지만 주님께서 구원해 주셨고, 다니엘도 사자 굴에 들어갔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될 때까지 우리에게 고난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진리를 따라 제대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박해를 받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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