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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2장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 본문의 “그”라는 대명사는 중립적으로 쓰였으며, 따라오는 여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대신 “그녀”로 해석을 하시는 것이 문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에 있지 않다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내로 묘사된 이스라엘이 음행과 같은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풍요의 신이라 불리던 바알을 따르며 하나님을 배신하여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광야로 보내시며 (3절), 다음 세대에 대한 긍휼함을 거두시고 (4절), 가시와 같은 고난으로 그들의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십니다 (6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을 우상숭배 했던 날만큼 그들에게 벌을 주겠다 하십니다 (13절).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도 언약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벌주시는 이유는 이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14절 이하를 보시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거나 벌을 받는 것은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축복은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끝이 나고, 하나님과 새로운 사랑의 관계가 시작이 됩니다. 이는 회복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광야의 생활이 끝이 나고 풍성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이 나고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한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이제 더 이상 바알이라는 우상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습니다.

다시 본문의 1절로 돌아갑니다. 호세아의 자녀의 이름 가운데 ‘로암미’과 ‘로루하마’가 있습니다. 로암미의 뜻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고, 로루하마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은 회복 이후 받게 될 새로운 이름입니다. “암미”의 뜻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고, “루하마”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광야의 생활을 멈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과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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