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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4장

일반적으로 죄를 정의할 때 윤리적인 면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죄의 근원을 영적인 것으로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하나님께서 고발하시는 세 가지 죄를 살펴보면 모두 영적인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진실”은 히브리어로 ‘에메트’이며, 모든 말과 행동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인애”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이고, 언약에 기초한 사랑으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의미합니다.

진실과 인애를 조금 더 쉽게 풀어보면, 진실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고, 인애는 약속을 지키는 것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둘 다 약속에 기반한 성품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약속은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족속이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언약을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모르고, 하나님의 배신하여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 숭배를 일삼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관계가 무너진 것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죄가 생겨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이웃과의 관계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절에 열거된 죄악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1절에 기록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절에 기록된 것처럼 이 땅이 저주를 받게 되고, 4-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영적지도자들조차 넘어지게 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6절).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식은 단순한 정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식은 1절에 언급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경험하여 얻게 되는 구체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1-59

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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