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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컬럼 | Pastor's Blog

새벽묵상
Daily Devotions
마가복음 12:1-2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루살렘에 머무시는 동안에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마가는 11장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인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여러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했는지를 은유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의 등장 인물의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도원을 만들고 타국으로 떠난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농부들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고, 포도원에 보낸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낸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비유에서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최후로 주인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이 아들마저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김정훈 목사
Nov 14, 2025
마가복음 11:20-33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가복음 11장의 12-14절의 연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하셔서 잎사귀가 무성한 한 무화과나무에 다가 가셨는데, 그 나무에는 아무 열매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13절에 마가가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라고 언급을 한 부분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어서 열매가 없는데 예수님은 왜 그 나무를 저주하셨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지역의 무화과나무는 3월경에 작은 열매가 열리고, 4-6월경에 잎이 나고, 제대로 된 열매는 6-8월에 열렸습니다. 3월에 나는 작은 열매를 ‘파가이’라고 불렀는데, 무화과나무에 잎이 무성하다면 당연히 파가이가 달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셨던 나무는 잎만 무성하고 아무 열매가 없었습니다. 마가가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기록한 것은 아직 6-8월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서 찾으셨던 것은 작은 열매였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는
김정훈 목사
Nov 13, 2025
마가복음 11:1-19
고대 중동에서는 전쟁을 나갈 때는 말을 타고, 평화의 때에는 나귀를 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시면서 나귀의 새끼를 타신 것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나타냅니다. 로마의 권력자들은 말과 병거를 타고 입성을 했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군사력과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으로 백성을 섬기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앞서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11장에서는 연약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십자가 고난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실 것을 구약의 선지
김정훈 목사
Nov 12, 2025
마가복음 10:32-52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세 번째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에게 벌써 두 번을 말씀하셨고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예수님의 공생애의 최종 목적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겼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친형제였던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겠다는 심보였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8절) 여기서 잔은 십자가의 고난을 세례는 순교를 의미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
김정훈 목사
Nov 11, 2025
마가복음 10:1-31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의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1-12절),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시는 주님 (13-16절), 그리고 부자 청년 이야기 (17-31절) 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첫번째 사건을 살펴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혼에 대한 질문을 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명기 24:1에 모세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이혼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해석은 “수치되는 일”을 간음과 같은 심각한 부정행위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진보적인 해석은 “수치되는 일”에 사소한 일들도 포함했습니다. 예를 들면, 요리를 못한다거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혼 사유가 되는 것
김정훈 목사
Nov 10, 2025
마가복음 9:30-50
마가복음 8장 후반부에서부터 예수님의 사역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뀝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번째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와 부활은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또 부활을 통해 죽음의 권세를 뛰어넘는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이해하지도 못했고 여쭤 보기도 어려워했습니다 (32절).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알려고 하기보다 예수님이 왕이 되었을 때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가치와 전혀 다른 판단 기준으로 움직이는 곳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김정훈 목사
Nov 8, 2025
마가복음 9:1-29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1절)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은 앞서 8장에서 언급되었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말씀과 연결해서 묵상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도 놀라서 항변할 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권능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만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도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권능을 본 자들은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일명 ‘변화산’이라고 불리는 높은 산에 올라가셨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변형이 되셨습니다. 그 옷이 희고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3절).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김정훈 목사
Nov 7, 2025
마가복음 8:22-38
오늘 본문은 두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벳새다에서 맹인의 눈을 치유하신 것이고, 두번째 사건은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의 북동쪽으로 요단강 하구 인근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히브리어로 ‘어부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복음 9:10 참고).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지만,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은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번에 치유를 하신 것이 아니라 두 번에 걸쳐 치유를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맹인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치유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안수에서는 사람들이 나무처럼 보일 정도로 시력이 회복이 되었고, 두번째에서는 시력이 완전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때로는
김정훈 목사
Nov 6, 2025
마가복음 8:1-21
육체의 오감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에도 감각이 있습니다. 감각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하고 인지하는 기능입니다. 육체에 속한 일들을 오감을 통해 인지하는 것처럼, 영적인 부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영의 세계에 대해서 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해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참고). 오늘 본문에는 칠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 명이 먹고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였습니다. 이 기적은 앞서 마가복음 6장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과 비교가 됩니다.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먼저 있었고, 이방 지역으로 전도 여행을 다녀오신 후 칠병이어의 기적을 예수님께서
김정훈 목사
Nov 5, 2025
마가복음 7:24-37
장로들의 전통에 관해서 예수님과 유대인 지도자 사이의 논쟁이 있은 후,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전도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던 예수님께서 이방 지역을 가신 것은 흔치 않은 장면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정결의 참된 의미가 마음의 회개에 있음을 가르치셨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여겼던 이방인들에게 먼저 찾아가신 것은 그분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천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로 지역은 지금의 레바논에 해당하는 곳으로 당시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해안 도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을 가셨을 때,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로보니게란 ‘수로’ 지방의 ‘보니게’라는 뜻으로 수리아의 페니키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지역적 개념으로 봤을 때 두로는 도시이고, 페니
김정훈 목사
Nov 4, 2025
마가복음 7:1-23
팬데믹 기간을 지나면서 평소 생활습관으로의 위생관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야외활동 후에 깨끗하게 손을 씻는 것이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 상식은 과학적 근거가 있고, 실제로 나쁜 세균을 손에서 씻어내는 것이 위생관리에 중요한 요소인 것을 많은 자료와 경험을 통해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장로들의 전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위생관리가 아닌 종교적 정결을 위한 의식이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후,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면서 유대 사회는 율법을 중심으로 재정비되었습니다. 성전 중심의 신앙에서 회당 중심으로 바뀌면서 말씀 교육과 율법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처음 목적과 다르게, 율법의 해석과 적용을 우선시하며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까지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김정훈 목사
Nov 3, 2025
마가복음 6:30-56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대표적인 기적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로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배불리 먹이셨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가 열두 바구니였습니다. 또 다른 기적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 제자들이 먼저 배를 타고 벳새다로 가게 하셨고, 이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실 때 물 위를 걸어가신 것입니다. 이 두 기적 모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일이었고,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신적인 권능을 가지셨던 분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초자연적인 기적 못지않게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0-31절에는,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다녀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예수님께 보고를 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 기록되
김정훈 목사
Nov 1, 2025
마가복음 6:1-29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에서 많은 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을 미워하며 죽이고자 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무리가 있었는가 하면 또 예수님을 존경하며 따랐던 많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 무리로 나뉘어진 이유는 예수님의 사역이 초자연적인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예수님처럼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병이 낫고자 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고자 하는 두 무리로 나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앞서 설명한 두 무리가 아닌, 예수님께 대해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세번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을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생애를 보았던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고향에서도 놀라운 지혜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3절에서 이들이 예수님을 무시하는 여러 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김정훈 목사
Oct 31, 2025
마가복음 5:21-43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의 딸이 죽었었는데 살린 사건과 오랫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치유된 사건이 그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이기는 전혀 다른 두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한가지 동일한 영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병으로 인해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수하시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야이로는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예수님을 모셔오는 중이었습니다. 큰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쌌는데, 어느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그녀의 믿음대로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능력이 나간 줄을 아시고, 그
김정훈 목사
Oct 30, 2025
마가복음 5:1-20
마가복음 4:35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5:1에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기로 정하셨고 그렇게 실행하신 것입니다. 거라사인의 지방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갈릴리 호수의 동쪽에 위치한 이방인들의 지역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곳에 가셨을까요? 큰 광풍이 일어나고, 바다와 바람을 명령하여 잔잔하게 하시면서까지 이곳을 가셨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힌트가 있습니다.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가셨습니다. 이방인들 가운데 더러운 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서 지내던 자였습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한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먼 길을 돌아
김정훈 목사
Oct 29, 2025
마가복음 4:21-41
어제 본문인 씨 뿌리는 비유에 이어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세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등불에 대한 비유 (21-25절), 자라나는 씨 비유 (26-29절), 그리고 겨자씨 비유 (31-32절)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바닷가에서 큰 무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계시고,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등불에 관한 비유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어떤 사람도 등불을 평상 아래에 두어 숨기지 않습니다. 방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을 끈다면 모를까 평상 아래에 두지는 않습니다. 빛은 결국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목적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진리는 절대 숨길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개인적인 영역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성령님으로 인해서 변화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세상에 전하게 됩
김정훈 목사
Oct 28, 2025
마가복음 4:1-20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1절). 상상만 해도 멋있는 장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앉으셨고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는데,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왔지만 뿌리가 없어서 해가 돋은 후에 말라버렸습니다. 또 어떤 씨는 가시떨기에 떨어졌는데, 가시가 자라면서 기운을 막아서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여쭈었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
김정훈 목사
Oct 27, 2025
마가복음 3:20-35
오늘 본문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29절인데, 성령을 모독하는 죄에 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29절). 성령을 모독하는 자가 누구인지 그러한 죄가 어떤 죄인지 해석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전 개역 한글에서는 성령을 훼방하는 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모든 논쟁의 시작점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오해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는데, 이를 미쳤다고 합니다 (21절). 그러자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해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서기관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2절). 한마디로 예수님이 귀신이 들려서 귀신을 내쫓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알세불이라 하는 귀신의 왕의 힘으로
김정훈 목사
Oct 25, 2025
마가복음 3:1-19
마가복음 2장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도 안식일에 관한 논쟁이 이어집니다. 사실 이 안식일 논쟁은 예수님을 죽이려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했던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내야 하는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안식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병자를 치유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안식일을 어기는 것으로 고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안식일에 대한 해석은 이들과 달랐습니다.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고 양을 그대로 둘 자가 없는 것처럼 (마태복음 12:11-12 참고),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는 것은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야만 하는 옳은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김정훈 목사
Oct 24, 2025
마가복음 2:13-28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7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체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거룩한 의인으로 생각했고, 세리와 같은 죄인과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교만한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는 세리와 같은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는 금식에 관한 논쟁 (18-22절) 과 안식일에 대한 논쟁 (23-28절) 으로 이어졌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행위인 금식을 통해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김정훈 목사
Oct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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